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말 왜구의 침입 (문단 편집) ==== [[황산대첩]], [[이성계]]의 승리 =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황산대첩)] [[파일:external/oi64.tinypic.com/2zsmd6c.jpg]][br]▲황산대첩도(荒山大捷圖) [[진포해전]]에서 함선이 거의 괴멸된 왜구들은 그 와중에서 죽은 사람도 많았지만, 상당수는 내륙으로 이동하여 현 충북 옥천인 옥주(沃州)까지 도망쳤다. 이 진포의 패잔병들에 더해 당시 [[한반도]] 여기저기에서 고려를 치고 있던 다른 왜구들도 점차 모이기 시작했고, 이렇게 모인 왜구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지만 고려군으로서는 이를 하나의 전기로 삼아볼 수 있었다. '''즉 [[몹몰이|왜구가 한 곳으로 모였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왜구에게 궤멸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]]를 맞이한 것이다.'''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즉시 전라도, 경상도, 양광도, 수도 부근에 있던 9명의 원수들을 한데 모아 왜구를 치려 했으며, 여기에 더해 추가적으로 당대 최강의 사병 집단이었던 [[가별초]]를 가진 이성계를 '''양광·전라·경상 3도 도순찰사(都巡察使)'''로 삼아 그를 중심으로 8명의 원수를 더해 추가 파병군을 준비하였다. 이로 인하여 '''원수의 숫자만 도합 17명에 당대 한반도 최강의 군대를 가진 이성계를 더한''' 실로 [[어벤져스]]급 규모의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. 이후의 전역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[[황산대첩]](荒山大捷) 항목 참조. 고려군은 9명의 원수가 모인 사근내역(沙斤乃驛) 전투에서 왜구에게 패배를 당하고 두 명의 원수가 사망하는 큰 타격을 입었으나, 이후 남원산성(南原山城)에서 왜구를 막으며 시간을 끄는 사이에 중앙에서 내려온 이성계가 사근내역 전투의 패전병들과 합류, 현 전라북도 남원인 황산 부근에서 [[아기발도]](阿只拔都)가 이끄는 왜구와 엄청난 대혈전을 벌인 끝에 아기발도를 죽이는 데 성공하고 왜구를 섬멸, '''지난 30여 년간의 왜구와의 전쟁 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.''' 이 승리로 인해 당시 한반도에서 출몰하던 왜구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, 몇몇 왜구가 10월 경에 김해를 공격했던 일 정도를 제외하면 사상 최대의 함선이 출몰했던 1380년대에는 더 이상 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. 또한, 이 승리로 막강한 군사력과 동북면의 경제력, 그리고 군사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 입지가 약하던 이성계는 대번에 나라의 [[영웅]]과 같은 포지션에 서게 되며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